저는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협회나 공공기관 옆에는 무조건 맛있는 식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왕십리에는 한국기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소고기구이 맛집인 유래회관도 있습니다.
제 논리는 이렇습니다. 협회에는 높은신 분들이 많다 > 식사하면서 회의하고 친목하는 것을 좋아한다 > 사회경험이 많고 꼰대다 > 맛에도 까탈스럽다 > 자연선택설처럼 까다로운 맛집이 살아남는다. 이런 논리입니다. 게다가 기원이라니, 바둑 기사들보다 집중력과 체력을 요하고, 오랜 시간동안 훈련해야 하며, 예민한 선수들은 없을 겁니다. 당연히 맛에도 까다롭겠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왕십리 바로 옆에 마장동이 있고, 마장동 시장은 서울 최고의 축산물 시장이 있는 곳이라서 자연스럽게 원재료를 구하기 쉽다보니 고기구이 식당, 곱창 등의 부속물 요리 식당이 많이 발전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합니다.
개요
상호 : 유래회관
위치 : 서울 성동구 마장로 196
분야 : 소고기구이
설명 : 2대째 50년 전통인 투쁠한우등심 전문
메뉴
고기 메뉴는 한우생등심, 한우안심 2종이며 후식류로 된장국수, 깍두기볶음밥이 대표적입니다. 냉면, 육회, 된장전골 등을 판매하지만 단언컨대 먹는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유래회관의 바닥은 좀 미끄럽습니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많은 손님들이 매일 같이 소고기 구이 연기를 피워 올리는데 유증기가 바닥에 가라앉지 않을 수 없죠. 그렇지만 식당 내부는 매우 깔끔합니다.
1++ 한우, 일명 투쁠 한우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비쌉니다.
구이식당 치고는 반찬이 좀 단출합니다. 파채무침을 1인당 1접시씩 주는건 좋네요. 저는 파채나 콩나물무침 같은 반찬을 아주 좋아해서, 공동 반찬으로 나오면 혼자 다 먹고 상대방 눈치를 보면서 추가 요청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주시면 참 감사합니다. 딱 군더더기 없는 반찬 조합입니다. 여기 파채는 매운맛이 좀 덜 빠져서 아주 아릿한 향이 납니다. 특이하게도 생양배추가 나오는데, 왕십리 소고기 구이집의 특성인 것 같습니다. 근처의 대도식당도 생양배추를 통으로 줍니다. 의외로 달짝지근해서 맛있습니다. 평상시엔 거들떠도 보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여기서는 먹게됩니다. 기름진 소고기를 맞이하기 전에 미리 좀 위장에 깔아준다는 생각으로 먹어줍니다.
두꺼운 통주물팬이 맞이해줍니다. 기름 빠지는 구멍이 없고 아주 두꺼운 팬이 말해줍니다. “여기에 뭘 굽든 맛있을거야!”
그리고 투박하게 나오는 한접시.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소고기에 기름층이 아주 자글자글하게 박혀있습니다.
비계를 툭 던져넣어 기름칠을 해줍니다. 기름 중의 최고의 기름은 고기 기름입니다. 빈대떡을 부쳐먹어도, 콩기름으로 튀기듯이 부쳐낸 광장시장 스타일 빈대떡 보다는 돼지 라드를 넣고 얇게 바싹하게 구운 이북 빈대떡이 더 맛있는 이유는 바로 기름에 있습니다. 기름 만세! 잘 달궈진 불판에 기름 코팅을 하고 등심을 올려주면, 얼마나 맛있게요! 달라붙지도 않고 아주 잘 익습니다. 이후 사진이 없는걸 보니 신명나게 먹느라 사진을 까먹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맛있다는 뜻!
고기를 구워 먹고 기름이 남은 그 불판에 바로 된장육수를 부어넣고 칼국수를 끌여먹습니다. 된장육수는 깔끔한데 멸치 맛이 강하게 나서 개운합니다. 대파와 양배추를 넣어서 채소 육수를 더한 뒤에 칼국수를 넣습니다. 갓 끓기 시작할 때 국물을 바로 떠서 먹으면 보통 맛이 없기 마련인데, 멸치된장육수라 그런지 맛있습니다. 속에서 저절로 크으~ 하는 소리가 올라옵니다. 된장에 양배추 넣는 것을 본적이 없는데,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집에서 시도는 안해볼 것 같군요.
기름진 소고기 기름을 된장육수 머금은 칼국수 면발이 싹 헹궈서 소화시켜줍니다. 거의 스팀청소기, 다이슨 무선 청소기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개운해지거든요.
저 된장육수 내기가 어려워요. 약간 집된장 같으면서도, 감칠맛이 적절한 저 맛. 많은 된장과 된장찌개용양념을 써봤지만 진짜 재현이 어렵습니다. 후식으로 된장칼국수 외에 깍두기 볶음밥도 가능합니다. 깍두기볶음밥도 저 팬에 볶아주십니다. 아 그럼 둘다 먹고 싶을 때는 어떡하죠?
후기
그리스로마신화에 보면 제우스가 인간들에게 제사를 받습니다. 원래 인간들은 고기를 열심히 불살라 바치곤 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위해 영양가 있는 고기를 남겨주려고, 제우스로 하여금 허름한 포장의 고기 대 화려한 과대포장 기름범벅 내장뼈조합 중에 후자를 선택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 덕분에 고기를 잘 먹고 단백질 섭취를 잘해서 튼튼해지고 건강해져서 문명도 잘 건설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되죠. 그리고 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산 꼭대기에 매달아 놓고 간이 매일 뜯기도록 벌을 줘버립니다. 유래회관에서 고기를 먹으면, 왜 제우스가 그토록 분노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투쁠 한우를 구워서 바치던 인간들이 옜다 살 조금 붙은 갈비뼈랑 곱창이나 먹어라 라고하면 당연히 화가 날 수 밖에 없겠죠.
물론 한국에서는 이런 신화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살은 구워먹고 뼈는 끓여서 육수내고 내장은 잘 손질해서 볶아먹거나 구워먹고, 심지어 머리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리기 때문이죠. 명태대가리로 육수를 내서 김치도 담가 먹을 수 있고, 하다못해 닭육수도 닭뼈와 닭발로 냅니다. 돼지머리로 편육도 만들어 먹는데 신이란 작자가 편식이나 하다니, 아주 혼나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우스가 편식쟁이로밖에 안보이네요.
맛있는 음식은 이처럼 사고의 무한 확장을 가져옵니다.